AI 데이터센터 경쟁, GPU 넘어 광통신으로…정부 MCF 기술 국산화 착수
AI 데이터센터 경쟁, GPU 넘어 광통신으로…정부 MCF 기술 국산화 착수
정부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내부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기 위한 차세대 광통신 기술 개발에 나선다. AI 연산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천·수만 개의 GPU를 하나의 시스템처럼 연결하는 네트워크 성능도 데이터센터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면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데이터센터용 다중코어 광섬유(MCF)와 공간분할다중화(SDM) 기반 광인터페이스 개발 과제를 추진하고 2031년까지 총 36억원을 지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9월 8일 공고한 신규 연구개발 과제의 명칭은 ‘AI 데이터센터용 다중코어 광섬유(MCF) 기반 공간분할다중화(SDM) 광인터페이스’다. 총 연구기간은 2026년 10월부터 2031년 12월까지 5년 3개월이며, 전체 연구비는 36억원이다. 정부는 공모와 평가를 거쳐 2개 안팎의 연구개발 과제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단순히 광섬유를 국산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대용량 데이터 전송 성능을 높일 수 있는 차세대 광인터페이스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에서는 GPU 자체의 연산성능뿐 아니라 GPU 사이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가 전체 시스템 효율에 직접 영향을 준다.
AI 데이터센터 광통신은 왜 중요한가
광통신은 전기 신호를 빛 신호로 변환해 광섬유를 통해 데이터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기존 구리 기반 연결 방식과 비교하면 장거리에서도 많은 데이터를 고속으로 전송할 수 있고, 대역폭 확대와 전력 효율 측면에서 장점이 있어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핵심 네트워크 기술로 활용된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일반적인 서버 환경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가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한다. 하나의 AI 모델을 학습하거나 추론하기 위해 여러 GPU가 동시에 연산을 수행하는 구조에서는 GPU 간 데이터 교환 속도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고가의 연산장치를 확보하고도 전체 시스템 성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AI 데이터센터 규모가 커질수록 서버 내부뿐 아니라 랙과 랙, 데이터센터와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에서도 더 높은 전송용량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광트랜시버, 레이저, 광섬유, 광연결장치 등 광통신 관련 부품과 소재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다중코어 광섬유 MCF는 무엇인가
정부가 개발 대상으로 정한 다중코어 광섬유(MCF)는 한 가닥의 광섬유 내부에 빛이 지나가는 통로인 코어를 여러 개 배치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인 광섬유가 하나의 코어를 이용해 데이터를 보내는 것과 달리 복수의 코어를 통해 여러 데이터 신호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여기에 공간분할다중화(SDM) 기술을 적용하면 하나의 광섬유가 제공하는 전송 공간을 여러 채널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수의 케이블로 더 큰 전송용량을 확보하거나, 동일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광섬유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AI 데이터센터처럼 좁은 공간에 수많은 장비와 연결선이 집중되는 환경에서는 단순히 케이블 수를 계속 늘리는 방식에 물리적인 한계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MCF와 SDM 기술을 함께 연구하는 것도 광섬유 한 가닥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 자체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은 광망 강국이지만 차세대 광섬유는 초기 단계
산업연구원이 지난 8월 공개한 ‘AI 시대 주목받는 광섬유, 한국의 현주소와 과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통신망에서 광케이블 기반 회선 비중은 90.5%에 달한다. 광통신 인프라는 폭넓게 구축돼 있지만 고부가가치 광섬유 소재와 차세대 제품 생산 능력에서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이 산업연구원의 진단이다.
광섬유 제조의 핵심 소재인 프리폼은 기술 진입장벽이 높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프리폼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적으로 약 20개사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프리폼을 자체 생산하는 업체가 1곳에 그치고, 이마저도 범용 제품 중심이어서 프리미엄 규격이나 다중코어 광섬유, 중공코어 광섬유와 같은 차세대 제품의 양산 역량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다중코어 광섬유 기술 역시 아직 초기 단계로 진단했다. 한국이 광통신망을 많이 구축한 국가라는 사실과 데이터센터용 고부가가치 광섬유의 원천기술 및 제조역량을 확보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의미다.
수출 지표도 국내 산업의 약화를 보여준다. 원문에 따르면 한국의 광섬유 수출액은 2022년 5800만달러에서 2025년 2700만달러로 줄었으며 연평균 감소율은 22.3%였다. 범용 광섬유 시장에서 중국과 인도 업체의 가격 경쟁이 거세진 가운데 차세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빠르게 전환하지 못한 것이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AI용 광케이블 수요 급증…가격지수도 크게 올라
반면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글로벌 광통신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5년 AI용 케이블 수요는 전년보다 77% 증가했고, 2029년까지 연평균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광섬유 가격 흐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글로벌 광섬유 가격지수는 2024년 3월 78.6에서 2026년 3월 263.0으로 상승했다.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단순 범용 통신망용 제품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고성능 광섬유와 연결부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 반영된 수치다.
산업연구원은 프리미엄 프리폼을 핵심전략기술에 포함하고 차세대 광섬유에 대한 국가 연구개발을 확대하는 한편, 공공 인프라 사업과 연계해 초기 수요를 확보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엔비디아는 광통신 기업에 수십억달러 투자
해외에서는 이미 연구개발 단계를 넘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3월 미국 광통신 기업 루멘텀과 전략적 협력계약을 체결하고 2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루멘텀은 연구개발과 생산능력 확대, 미국 내 신규 생산시설 구축 등에 자금을 사용할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같은 날 코히런트에도 2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코히런트 역시 AI 데이터센터용 레이저와 광네트워크 제품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미국 내 제조 기반을 강화하는 데 투자를 활용한다.
이어 5월에는 코닝과 장기 협력을 발표했다. 엔비디아와 코닝의 협력 규모는 최대 32억달러이며, 코닝은 미국 내 광연결 솔루션 생산능력을 현재의 10배 수준으로 늘리고 광섬유 생산능력도 50%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노스캐롤라이나와 텍사스에 신규 생산시설 3곳을 건설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이들 세 기업과 관련해 발표된 엔비디아의 투자·협력 규모를 합하면 최대 72억달러에 이른다. GPU 공급뿐 아니라 GPU를 연결하는 광네트워크와 핵심 부품의 생산능력까지 함께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AI 인프라 경쟁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도 AI 데이터센터 전송기술 개발 참여
국내 통신장비 업체들도 AI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우리넷은 지난 5월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추진하는 ‘2026년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인프라 선도사업’에서 AI 데이터센터 간 전송기술 개발 과제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우리넷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상명대학교, 부경대학교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2030년 12월까지 연구개발을 진행한다. 개발 대상은 서로 떨어진 AI 데이터센터 사이에서 AI 자원을 확장해 사용할 수 있도록 초저지연·무손실·고대역폭 전송망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이번 과기정통부의 MCF 기반 광인터페이스 연구가 데이터센터 내부와 광연결 기술의 고도화에 초점을 둔다면, 데이터센터 간 전송기술 사업은 여러 AI 데이터센터를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영역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두 사업 모두 AI 연산자원 자체뿐 아니라 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핵심 인프라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GPU 확보 이후 과제는 ‘연결 기술’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될수록 필요한 장비와 소재의 범위도 넓어진다. GPU뿐 아니라 이를 연결하는 스위치, 광트랜시버, 레이저 소자, 광섬유, 광케이블과 각종 연결부품까지 함께 확보해야 실제 데이터센터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31년을 목표로 다중코어 광섬유 기반 광인터페이스 연구에 착수한 배경도 이 같은 공급망 변화와 맞물려 있다. 한국은 이미 높은 광통신망 보급률을 갖고 있지만 차세대 광섬유와 고부가가치 소재의 자체 생산능력은 제한적이라는 진단을 받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용 광통신 부품을 대상으로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에 들어간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원천기술 연구와 상용화 기반 확보가 동시에 과제로 떠올랐다. 앞으로 AI 인프라 경쟁은 얼마나 많은 GPU를 확보했느냐뿐 아니라 확보한 연산자원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