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예실차 손실 1조9106억원…IFRS17 계리가정 관리 강화
생보사 예실차 손실 1조9106억원…IFRS17 계리가정 관리 강화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예상했던 보험금·사업비와 실제 지출 사이에서 발생한 누적 손실이 2조원에 가까워졌다. 2023년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17이 시행된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생명보험사 22곳에서 발생한 누적 예실차 손실은 1조9106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보험금 지급액이 당초 예상치를 웃돌면서 발생한 손실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손해율 가정을 보수적으로 조정하는 동시에 계리가정의 산출과 변경, 검증 과정에 대한 감독도 강화하고 있다.
생명보험 예실차 손실은 무엇인가
예실차는 보험사가 보험계약에서 발생할 보험금과 사업비 등을 미리 추정한 금액과 실제 지출액 사이의 차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보험금이나 사업비가 적게 지출되면 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반대로 실제 지출이 예상치를 넘어가면 손실 요인이 된다.
이 차이가 특히 중요해진 배경에는 2023년부터 시행된 IFRS17이 있다. IFRS17에서는 보험사가 보험계약에서 앞으로 발생할 현금흐름을 추정하고 이를 현재 시점에서 평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손해율과 사업비율, 해지율 등 미래 현금흐름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계리가정이 보험부채와 손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따라서 예실차가 지속적으로 큰 폭의 손실을 기록한다는 것은 실제 보험금이나 사업비 지출이 보험사가 설정한 예상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이 최근 계리가정의 산출뿐 아니라 변경과 검증 절차까지 관리 대상으로 강화하려는 것도 이런 배경과 맞닿아 있다.
3년 반 누적 손실 1조9106억원…92%가 보험금에서 발생
국내 생명보험사 22곳의 포괄손익계산서를 기준으로 2023년부터 2026년 상반기까지 누적 예실차 손실은 1조9106억원으로 집계됐다. 보험금과 사업비에서 발생한 예실차를 합산한 금액이다.
이 가운데 보험금 예실차 손실은 1조7524억원으로 전체 누적 손실의 약 92%를 차지했다. 사업비보다 보험금 지급에서 예상과 실제 결과 사이의 차이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의미다.
연도별 흐름을 보면 손실 확대 속도도 뚜렷하다. 2023년 1792억원이었던 전체 예실차 손실은 2024년 2124억원으로 증가했다. 2025년에는 9438억원으로 급증해 전년의 네 배를 넘어섰다. 2026년에는 상반기에만 5751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반년 동안 지난해 연간 손실의 60%를 넘어선 규모다.
보험금 예실차만 따로 봐도 올해 손실 확대 흐름이 이어졌다. 2026년 상반기 생명보험업계의 보험금 예실차 손실은 5332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2492억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가정의 정확도가 보험사 손익 관리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이유다.
한화·삼성·흥국생명에 누적 보험금 손실 81% 집중
회사별로는 대형 생명보험사에서 손실 규모가 크게 나타났다. IFRS17 도입 이후 누적 보험금 예실차 손실은 한화생명이 8452억원으로 가장 컸고 삼성생명 3613억원, 흥국생명 2217억원 순이었다. 세 회사의 손실을 합하면 전체 보험금 예실차 손실의 약 81%에 해당한다.
다만 예실차 문제가 일부 회사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조사 대상 22개 생명보험사 가운데 15개 회사가 누적 기준으로 보험금 예실차 손실을 기록했다. 손실 규모에는 회사별 차이가 있지만 실제 보험금이 예상보다 많이 지급되는 현상이 업계 전반에서 나타난 셈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한화생명의 보험금 예실차 손실이 2547억원으로 가장 컸다. 삼성생명은 1043억원, 흥국생명은 607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AIA생명 401억원, 동양생명 346억원으로 집계됐다.
간병·입원일당 경쟁이 손해율 가정의 변수로
보험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간 판매 경쟁이 집중됐던 간병인 사용일당과 상급종합병원 1인실 입원일당 등 일부 보장도 예실차 확대와 연결해 살펴보고 있다. 보험 가입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실제 발생 비용이나 정해진 가입금액에 따라 일 단위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형태의 담보다.
이런 상품은 판매 초기 충분한 경험통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금 지급 수준을 장기간 정확하게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 보험금 지급이 처음 설정한 가정보다 빠르게 늘어나면 보험사가 예상했던 손해율과 실제 손해율의 차이가 커질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신상품을 출시할 때 향후 보험금 지급 수준을 추정해야 하지만 판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담보는 장기간 축적된 경험통계가 부족하다. 금융당국이 경험통계가 짧은 신규 담보에 별도의 손해율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조치다.
신규 담보 손해율 최소 90% 적용
금융당국은 2026년 2분기 결산부터 경험통계가 5년 이하인 신규 담보에 최소 90%의 손해율을 적용하도록 했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와 지급하는 보험금의 관계를 나타내는 핵심 가정이다. 최소 90%를 적용한다는 것은 보험료 수입에 비해 보험금이 적게 지급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가정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보험사가 실제보다 낮은 손해율을 가정하면 초기에는 장래 보험금 지출이 적은 것으로 계산될 수 있다. 이후 실제 지급액이 예상치를 웃돌 경우 예실차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경험통계가 충분하지 않은 상품에는 보다 보수적인 가정을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적용 범위도 확대될 예정이다. 2026년 4분기부터는 간편보험 담보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다. 간편보험은 일반 보험보다 가입 심사 절차를 간소화해 병력이 있거나 일반적인 보험 가입이 어려웠던 소비자도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군이다. 해당 상품의 손해율 가정까지 보수적으로 조정되면 보험사들의 보험부채 평가와 향후 상품 운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계리가정 보고서 도입…금융감독원에 매년 제출
금융위원회는 9월 11일 IFRS17 체계에서 보험부채 평가의 합리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안을 규정변경예고했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특정 담보의 손해율을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험사가 미래 보험금과 사업비 등을 추정하는 계리가정의 관리 체계 자체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계리가정 현황과 변경 이력 등 관련 자료를 담은 계리가정 보고서를 매년 사업보고서 제출 시 금융감독원에 함께 제출하게 된다. 금융당국은 보험부채 평가에 활용되는 손해율과 사업비 등 계리가정이 보험회사의 미래 현금흐름과 손익에 직접 영향을 주는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보험사의 내부 관리 절차도 강화된다. 보험회사는 계리가정 산출과 변경에 관한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연중 계리가정을 변경하는 경우 위험관리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가정을 설정한 결과뿐 아니라 어떤 절차와 근거를 거쳐 가정을 만들고 수정했는지를 감독 범위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인 K-ICS 시행 이후 보험부채 평가가 정교해진 만큼 보험회사 경영 전반의 위험관리 체계도 지속적으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계리가정은 보험부채뿐 아니라 향후 손익에도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이 적용되면 실제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는 시점에 예상과 실적 사이의 차이가 손실로 나타날 수 있다.
예실차 축소 여부, 실제 보험금 지급 흐름이 관건
제도 변화로 앞으로 새롭게 설정되는 손해율과 계리가정은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관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이미 판매된 계약에서 발생하는 보험금은 기존 가입자의 실제 이용과 청구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가정을 조정한다고 해서 누적된 예실차 문제가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25년 전체 예실차 손실이 9438억원으로 크게 확대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5751억원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하반기 실제 보험금 지급 흐름이 중요해졌다. 금융당국은 신규 담보 손해율 하한과 계리가정 보고서, 내부통제 강화 등을 통해 예상과 실제 지급액 사이의 격차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IFRS17 도입 이후 생명보험업계에서 누적된 1조9106억원의 예실차 손실은 보험사의 미래 지급액 추정이 실제 손익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향후에는 상품 판매 실적뿐 아니라 판매 당시 설정한 손해율과 사업비 등 계리가정이 실제 경험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그리고 그 차이를 보험사가 얼마나 신속하게 반영하는지가 보험회사의 손익 관리와 회계 신뢰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