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카누, 한국인 ACF 사무총장에 보트 요청…2018 단일팀 인연 다시 주목
북한 카누, 한국인 ACF 사무총장에 보트 요청…2018 단일팀 인연 다시 주목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북한 카누 대표팀이 경기용 보트를 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인 김은석 아시아카누연맹(ACF) 사무총장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다. 통상 참가국들이 현지 대회 조직위원회를 통해 장비를 빌리는 것과 달리 북한이 과거 남북 카누 교류에 참여했던 한국 측 인사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북한올림픽위원회 관계자라고 밝힌 발신자는 최근 대한카누연맹 김은석 사무처장에게 영문 이메일을 보내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카누 스프린트 경기에 사용할 보트 2대를 대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김 처장은 현재 아시아카누연맹 사무총장을 맡아 연맹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이메일은 특정 개인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대신 'Dear Colleague'라는 인사말로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아시아카누연맹 회원으로 활동하며 회비를 납부해 온 만큼 김 사무총장이 한국 국적이라는 점 역시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조직위가 맡는 보트 대여…북한은 ACF에 먼저 문의
카누 스프린트는 선수들이 잔잔한 수면에 설치된 직선 코스에서 동시에 출발해 속도를 겨루는 종목이다. 카약은 앉은 자세에서 양쪽으로 패들링하고, 카누는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한쪽 방향으로 패들을 젓는 방식으로 구분된다.
국제종합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경기용 보트 운송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장비 자체가 크고 운송 절차도 복잡하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에서는 참가국이 개최지 조직위원회를 통해 현지에서 장비를 빌리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북한이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공식 대여 창구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먼저 아시아카누연맹의 한국인 실무 책임자에게 연락해 해결 방법을 문의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장비 대여 요청을 넘어 과거 남북 카누 교류 과정에서 형성된 관계가 실무적인 연결 고리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사무총장은 북한 측에 직접 보트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아시아카누연맹 실무 책임자 자격으로 북한의 요청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전달했다. 조직위원회는 해당 요청을 받아들였고 북한 선수들에게 플라스텍스사의 스프린트 경기용 보트 2대를 대여하기로 했다.
김은석 사무총장과 북한 카누의 인연은 2018년부터
북한이 김 사무총장에게 연락한 배경에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있다. 당시 남북은 카누 용선 종목에서 단일팀을 구성했고, 김 사무총장은 현장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과 운영에 참여했다.
특히 여자 용선 500m에서는 남북 선수들이 함께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단일팀은 결승에서 2분24초788을 기록해 중국을 제치고 우승했다. 이는 남북 단일팀이 국제 종합스포츠대회에서 함께 따낸 첫 금메달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여자 단일팀은 이에 앞서 200m에서도 동메달을 확보했다. 당시 시상식에서는 특정 국가의 국가 대신 한민족을 상징하는 '아리랑'이 연주됐으며, 남북이 하나의 팀으로 출전한 장면은 2018 아시안게임의 대표적인 남북 스포츠 교류 사례로 기록됐다.
이번 아이치·나고야 대회 북한 선수 등록 명단에는 2018년 단일팀에서 금메달을 함께 만들었던 차은영과 정예성도 포함됐다. 8년 전 같은 배에 올라 한국 선수들과 경쟁했던 북한 선수들이 다시 아시안게임 카누 종목에 출전하면서 당시 인연이 자연스럽게 다시 주목받게 됐다.
북한, 일본 개최 하계 아시안게임에는 처음 참가
이번 대회는 북한에게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일본에서 하계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것은 1958년 도쿄, 1994년 히로시마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지만 북한이 일본에서 열린 하계 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다.
1958년 도쿄 대회 당시 북한은 대회 참가 자격이 없었다. 당시 북한은 아시아경기연맹 회원국이 아니었으며 이후 1974년 회원으로 가입해 같은 해 테헤란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 대회에 출전했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는 북한이 참가 자격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선수단을 보내지 않았다. 당시 북일 관계와 입국 문제 등을 둘러싼 상황이 불참 배경으로 거론됐다. 이에 따라 2026년 대회는 북한 선수단이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일본 땅을 밟는 첫 사례가 됐다.
북한은 이번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14개 종목, 180여명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역대 아시안게임 참가 가운데서도 상당한 규모다. 일본은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스포츠 교류 목적을 고려해 이번 대회 참가 선수단의 입국을 허용했다.
카누 스프린트는 9월 23일부터 미요시호에서 진행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일본 아이치현과 나고야 일대에서 열린다. 카누 스프린트 경기는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미요시호 카누 경기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미요시호 카누 경기장은 500m 길이의 9개 레인이 설치된 상설 경기장으로, 일본 국내 대회뿐 아니라 국제 규모의 경기를 치른 경험이 있는 곳이다. 북한이 요청한 스프린트용 보트 2대 역시 이 경기장에서 사용될 예정이다.
이번 장비 대여는 남북이 공동팀을 구성하거나 별도의 스포츠 교류 사업을 추진하는 사안은 아니다. 북한 선수단이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장비 문제를 아시아카누연맹과 개최지 조직위원회가 해결한 실무적인 사례에 가깝다.
다만 북한이 조직위원회가 아닌 한국 국적의 연맹 사무총장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2018년 남북 선수들이 함께 배를 타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만들었던 인연이 8년이 지난 뒤 국제연맹 업무 과정에서 다시 연결됐기 때문이다.
보트 대여 문제는 조직위원회가 장비 제공을 결정하면서 일단 해결됐다. 이제 북한 카누 대표팀은 빌린 장비를 이용해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카누 스프린트 경기에 나서게 된다. 과거 남북 단일팀 금메달의 주역까지 포함된 북한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어떤 경기를 펼칠지도 관심을 모으게 됐다.